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인 조언을 풀어놓은 책이다.
막연하게 생각해온 죽음
나에겐 해당되지 않을것 같은 죽음
그러나 누구나 피해갈수 없는 길이기에
우리는 잘 알아야 되고,
준비해야 되고,
받아들여야 된다.
start~
1. 위험한 상황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을 거라는 깨달음.
어쩌면 병이 나을 수도 있고
늙는 걸 걱정하기엔 아직 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도 결국?

중세 일본의 도겐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죽을 때가 오면 그냥 죽어라.
죽음 속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난해한 표현이다.
이 말은 어떤 것에 완전히 빠져들면
다른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것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이 순간이다.
삶은 온전히 삶이고,
죽음은 온전히 죽음이다.
살아가든 죽어가든 우리가 그 속에 완전히
잠겨 있으면 그 순간이 전부다.
2. 저항
우리는 눈을 가리고 죽음을 반쯤
부정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니다.
머리로는 인정하면서
마음으로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니
인간은 참으로 모순된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수용은 거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이뤄진다.
죽음을 숙고하는 것은
실제로 저항을 숙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을 준비가 될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 두려움을 오래,
아주 오래 검토해야 된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
즉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된다.
3. 좋은 죽음

조용한 죽음이 반드시 좋은 죽음은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고뇌하고 슬퍼할 수 있다.
소란스러운 죽음이
반드시 나쁜 죽음은 아니다.
탄생의 순간은 요란하고 힘겨운 투쟁이다.
죽는 순간 역시 맹렬한 투쟁일 수 있다.
죽음이 특정 방식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와 다를 땐 나쁘다고 판단할 것인가?
어차피 혼자서 가야 할 길이다.
죽음의 가치는 남들의 생각에 달려있지 않다.
내 죽음은 오로지 내 소관이며,
내 죽음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막연히 '좋은 죽음'을 바라지 말고
'적합한 죽음'을 고민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4. 의사소통
경청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어렵긴 하지만 복잡하진 않다.
의사소통에 능한 사람은 별로 없다.
흔히 자기 생각이나 뜻을 잘 설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게 더 중요하다.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에너지의 절반은
경청하는 데 써야 된다.
상대방이 말할 땐 귀를 쫑긋 세워라.
차분하게 임하라.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반복하라.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사람은
'보호자'가 된다.
보호자는 중용과 프라이버시,
침묵과 웃음 등 일상생활에서 놓칠 수 있는
온갖 일들의 옹호자요,
죽어가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호자 역할을 해야 된다.
또한 문지기 역할도 해야 된다.
환자도 방문자도 문지기가 필요하다.
문지기는 방문자에게 웃으면서
"이제 그만 일어나시는게 좋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문까지 안내할 수 있어야 된다.
5. 마지막 몇 달
죽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괴롭고 험난하다.
옛 자아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등장한다.
우리는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비탄에 빠져든다.
"왜 나야? 왜 하필 나야 ?"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해야 된다.
어떤 모습으로 얼마 동안 갈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죽어가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이 직면한
첫 번째 과제이자 가장 힘든 과제 중 하나는
만사가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사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6. 집에서 모신다고?
193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은 대부분
가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제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 죽을지
선택하려고 한다.
집에서 모실 경우,
가족은 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피긴
하지만 대개 환자의 고통스러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약물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위생이나 살균 면에서 보호 시설보다
부족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다.
1930년대처럼 대가족이 모여
살지도 않고 장거리 출퇴근과
초과 근무 때문에 환자를 하루 종일
돌보기도 어렵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때로는 화가 치밀 수 있다.
분노가 쌓이면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좋지 않다.
중대한 시점에서 뒤로 빼는 사람도 속이
편치만은 않다. 책임을 떠맡은 당신도
힘들지만 남은 식구들도 책임을 회피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가정이 파괴될 수 있다.
그만큼 엄청난 사건이며,
남겨진 가족들이 남보다 못한 사이로
멀어질 수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간병'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7. 마지막 몇 주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죽음을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찾겠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회피하면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임종을 몇 주 앞둔 시점엔 몸이
몹시 피로해진다.
활력과 기력이 쭉쭉 떨어진다.
그러다 결국 죽는다.
생명의 기운이 다 없어지는 것.
그게 바로 죽음이다.
환자는 눈을 감기 전에 자질구레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당사자가 처리하기 어려운 자잘한
일을 도와주라.
8. 마지막 며칠
탄생과 죽음은 으레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기 때문이다.
9. 마지막 순간
죽는 순간엔 자잘한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생명의 기운이 쇠하다가 완전히 고갈된다.
눈이 흐릿해지고 푹 꺼진 것처럼 보인다.
근육이 늘어지고 턱이 축 처진다.
피부는 한 번도 못 보았던 형체로 변한다.
수없이 쳐다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낯선 타인처럼 보인다. 가면을 쓴 것 같다.
죽은 몸은 세상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우리는 움직이는 상태의 몸이고
계속해서 움직이려 한다.
시신은 움직이지 않는 몸이다.
그것을 '영면에 드신 몸'이라고 부르는데
영원히 잠들었다는 뜻이다
10. 시신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그대는 죽어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죽은 이를 추억하면서
동시에 우리도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이다.
11. 애도
우리는 충격에 빠진다.
있지도 않은 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허공만 가른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두 팔을 허우적 거린다.
열쇠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열쇠가 없다.
'어, 뭐지?'
애통은 바로 '어, 뭐지?'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여러 MRI 연구 결과,
애도하는 뇌는 다른 감정과
다른 패턴을 보인다고 드러났다.
감정은 보통 뇌의 특정 부위만 밝히지만
애통은 기억과 소화, 시각적 이미지
등 온갖 부위에영향을 미친다.
애통은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을 만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영원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된다.
애통은 마지막 숨을 거둔 뒤에 내쉬는
또 다른 숨이다.
12. 기쁨
우리는 위태로운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눈앞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삶에 간절히 매달린다.
우리는 나날이 빛나는 특별한 삶을 찬미한다.
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에는 죽음이 따른다.
아무리 다정하고 완벽한 만남도 결국엔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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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가족과 함께 못한다는것은
너무 외롭고도 슬프다.
남은 사람들에게도 큰 상처고 아픔이 된다.
어느날 아버지는 항상 그러셨던것처럼
시골 집에 며칠 다녀오신다고 나가셨다.
그날 저녁 온 식구들이 휴대폰을 했지만
연락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아버지 걱정에
시골집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시골집 도착해서 집앞 산에 가서
나무 베다가 심장마비로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홀로.. 그 추운날 산에서 하룻밤을....
너무 괴로웠다.
애통함... 그것이 뭔지.. 우리는 안다.
'그리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119에서 말씀하시길..
아버지는 고통없이 가셨을거라고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속에서
그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우린 언젠가는 아버지를 만날테니깐..
사람은 스스로의 죽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기에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말자!
대화를 많이 하자!
추억을 더 많이 공유하자!
건강하자!
함께 행복하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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